EBS 박광주 기자 [학폭위 1편] "신고한들 달라질까"…좌절하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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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23-06-12본문
[EBS 뉴스12]
지난 한 달 동안도 학교폭력 피해를 호소하며, 학생 두 명이 연달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가운데 한 명은 이런 내용의 유서를 남겼습니다.
신고한들 뭐가 달라질까.
제대로 처분이 나오기 어려울 수 있는 상황에서, 일을 크게 만들 자신이 없다고도 했습니다.
피해 사실을 알려 공식절차를 밟더라도 해결되는 게 없을 거라는 좌절이 읽힙니다.
학교폭력에 대응하는 우리 제도는 과연 제 역할을 하고 있을까, EBS 뉴스는 오늘부터 이 문제를 자세히 따져보려 합니다.
지난해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가 내린 조치 결정문 1천8백여 장을 입수해 심층 분석했고, 그 결과를 오늘부터 연속보도합니다.
먼저, 어렵게 학폭위 처분을 받아낸 뒤에도 고통받는 피해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박광주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친구를 만나러 집을 나섰던 중학생 딸이 다음 날에야 돌아왔습니다.
온몸이 피멍으로 얼룩진 상태였습니다.
인터뷰: A양 어머니
"(가해 학생들이) 얼마나 괴롭게 협박했는지 (딸이) '정신병원 데려다줘라 무섭다. 다른 데 숨겨 줘라.'"
딸은 6시간 동안 한살 위 선배 4명에게 속옷 차림으로 손발이 묶인 채 맞았습니다.
이들은 딸의 몸에 낙서까지 했고, 폭행 장면을 촬영해 유포했습니다.
학교폭력위원회의 처분 결과는 4호 ‘사회봉사’.
정작 피해 학생은 참석 요청을 못 받아 진술 기회조차 없었습니다.
국민청원을 통해 이 사실이 공분을 산 뒤에야 다시 학폭위가 열렸고, 가해 학생 4명의 징계는 8호 '전학’으로 뒤집혔습니다.
인터뷰: 권성룡 / 학교폭력 전문 변호사
"(2차 학폭위에서 한 심의워원이) 추가적인 피해 진술을 하는 것이 피해 학생의 잘못이 있다는 식으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책임 소재를 피해 학생 측에 떠넘기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었을 것 같다는 불안함이 들기도 합니다."
지난해 서울 지역 학교폭력위원회 결정문 1천8백여 장을 입수해 분석했습니다.
성폭행 후 관련 사실을 유포한 학생에게 각각 4호와 8호, 화장실에서 무단 촬영한 사례에 3호와 6호 등 똑같은 사안에 징계가 엇갈렸습니다.
반면, 심각한 정도가 전혀 달라 보이는 학교폭력이 같은 처분을 받기도 합니다.
인터뷰: 서아람 / 학교폭력 전문 변호사
"고등학교 남학생이 다른 남학생하고 같이 여학생을 밀폐된 곳에 가둬놓고 CCTV를 가린 후에 폭행한 사건이 있었어요. 이 사건이 3호 처분이 나왔어요. (중학생들끼리) 서로 말싸움을 하다가 돼지라고 불렀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것도 3호 처분이 나왔습니다. 전자하고 후자가 같은 정도로 처분된다는 게 도저히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죠"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 학폭위는 심각성, 지속성, 고의성, 반성과 화해 정도에 따라 징계 수위를 결정합니다.
하지만 양형기준과 같은 구체적 징계 산정 기준은 없어서, 최종 결정은 위원들의 사실상 자의적 판단에 맡겨져 있습니다.
인터뷰: 안분훈 변호사 / 前 A교육지원청 소속
"빨리 끝내려고 하는 사람들은 의견 없고 그냥 '3점' '3점' '3점' 이렇게 손 딱 대고 그냥 끝내 버립니다. 학생들의 인생이 그냥 관심이 없는 겁니다."
충분한 소명과 처분을 바랐던 피해 학생과 가족들은 학폭위 이후 더 큰 상처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인터뷰:
"가르쳐 주고 도와주고 제대로 이렇게 해줬으면 좋겠어요. 마음이라도…그냥 우리가 잘못했나 원래 이렇게되는 건가 그런 생각을 했잖아요."
지난해 학교폭력 처분에 불복해 행정심판을 청구한 피해학생은 2년 전과 비교해 2.5배 급증했고, 가해 학생의 불복 사례도 1.8배 늘었습니다.
EBS 뉴스 박광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