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서아람 변호사 외전] 법왜곡죄, 왜곡된 입법의 좋은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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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24-10-16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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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해석·법률 적용의 왜곡 등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불명확
검·경 통제, 현행법으로 충분
입법, 보수적이고 신중해야
“나쁜 놈 잡는 데 예의가 필요해? 잡으면 장땡이지.”
영화 ‘젠틀맨’에서 검사 역할을 맡은 배우의 대사입니다. 사실 이와 비슷한 대사들은 검사 영화에 숱하게 나옵니다. 영화 ‘검사외전’의 “내가 검사다, 내가 법이다”, 영화 ‘더킹’의 “내가 역사야, 나라고”. 대중매체 속 검사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실제와 상당히 다른 것에 이질감을 느끼게 됩니다.
현실에서 검사가 ‘내가 법’ 운운하면서 민원인을 깔아뭉갠다? 장담컨대, 전국으로 퍼져 있는 검찰 메신저를 통해 반나절 내로 온 검찰에 소문이 나고, 부장님, 차장님, 검사장님 순으로 불려 가 문책을 받고, 감찰받고, 아마 민원이나 형사 고발도 들어올 겁니다. ‘검사동일체’라는 말은 검사 한 명이 빠지더라도 그 자리를 곧바로 다른 인원이 대체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며, 이를 위해 검찰의 모든 업무는 철저히 시스템화되어 있습니다. 검사가 하는 거의 모든 업무는 지휘부의 순차적인 결재를 받아야 하고, 검사가 내린 기소나 불기소 결정은 항고, 재정신청, 1심부터 3심까지의 재판을 통해 고등검찰청과 법원이 들여다보고 시정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구형의 경우 내부 사건처리기준표 또는 PGS 양형시스템에 따라 계산하여 매기게 되고, 그 밖에도 검찰수사심의위원회, 검찰시민위원회 등 외부 위원들 또한 검사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역할을 합니다.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검사가 재량을 발휘할 수 있는 범위가 그렇게 넓지는 않다는 뜻입니다. 강한 권한을 가진 것은 검찰 조직 자체이지, 검사 개인이 아닙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법 왜곡죄’를 골자로 하는 형법 개정안 및 검찰청법 개정안이 법안 소위로 회부됐습니다. 법 왜곡죄는 검사나 경찰이 1) 범죄혐의를 발견하고도 수사를 하지 아니한 경우 2) 범죄사실이 인정됨에도 기소하지 아니한 경우 3) 피의자, 피고인의 유리, 불리를 불문하고 증거를 은닉, 불제출, 조작한 경우 4) 증거해석, 사실인정, 법률적용을 왜곡하거나 그 정을 알면서 묵인한 경우에 10년 이하의 징역과 자격정지에 처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고, 검찰청법 개정안은 검사 근무성적 평정 기준에 기소 사건 대비 유죄 판결 비율을 반영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검찰이나 경찰 등 수사기관이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고 편파적인 수사와 기소를 자행하면서 사건 처리에서 공정성을 상실하고 정의와 인권을 침해하고 있어, 이와 같은 법 왜곡행위를 단속하고 처벌하겠다는 취지입니다.
너무도 좋은 법이 아니냐고요? 검사들이 일을 똑바로 하면 걱정할 게 없지 않냐고요? 해당 법안이 명확하고 객관적인 문구로, 검사들의 업무를 정당하게 감독하는 내용이라면 당연히 문제될 게 없습니다. 그러나 해당 법안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수사와 공판 업무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 하지 않은 채 만들어진 게 아닌가 하는 염려가 듭니다.
예를 들어, 처벌 대상의 범위가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불명확합니다. 증거를 불제출하면 처벌한다고요? 그렇다면 그 증거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요? 증거해석이나 법률적용을 왜곡하면 처벌한다는데, 같은 증거를 두고 피의자나 고소인과 다른 관점에서 해석한다면 무조건 처벌인가요? 법률해석이라는 것은 워낙 천차만별이라 한 사건에서도 경찰, 검사, 1심 판사, 2심 판사, 3심 판사의 의견이 계속 달라지기도 하는데 그러면 누굴 기준으로 ‘올바른 법률해석’을 정해야 할까요?
또 있습니다. 혐의가 인정되면 무조건 기소하라는데, 그러면 기소유예는 하면 안 되는 것일까요? 제가 검사로 일할 때, 대학원생 한 명이 연구실에 새로 들여온 최신 프린터기를 시험한답시고 만 원짜리 한장을 복사해서 들고 다니다가 입건된 적이 있었습니다. 통화위조죄는 무기 또는 2년 이상의 징역인데, 그러면 이런 경우에도 대학원생을 기소유예하지 말고 구공판해서 집행유예 이상의 형을 받게 해야 하는 걸까요? 그게 정의이고 올바른 검찰권의 행사일까요?
‘증거해석, 사실인정, 법률적용을 왜곡’ 같은 애매모호한 문구는 죄형법정주의의 대원칙인 ‘명확성의 원칙’에 반할 여지가 큽니다. 이런 논리라면 의사는 오진죄나 처방왜곡죄로 처벌하고, 학생이 수험에 실패한 것에 대해 교사의 책임을 물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가진 사람이 행하는 업무를 검열하려면, 누구나 납득할 만한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포괄적인 입법이 실제로 이루어진다면, 경찰과 검사는 개인적으로 고소, 고발당하고 처벌당할 것이 무서워 결국 아무것도 못 하게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법령조사 및 사법 제도연구를 관장하는 기관인 법원행정처에서도, 해당 입법은 불필요한 고소 고발을 남발하게 하여 수사기관의 직무 수행에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고, 개정안의 구성요건이 의미가 추상적이고 불분명하다고 지적하는 의견서를 국회에 냈을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경찰과 검찰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냐고요? 만일 진짜로 증거를 인멸하거나 만들어내고 증인을 협박하여 증언을 조작하는 악질 검사가 있다면, 현행법으로도 충분히 검거하고 처벌할 수 있습니다. 증거인멸죄, 직무유기죄, 허위공문서작성죄, 직권남용죄, 위증교사죄, 협박죄, 강요죄, 공용서류무효죄 등등, 적용할 수 있는 죄명은 차고 넘칩니다. 수사 과정에서 부정한 행위를 저지르고 위 죄목들로 엄중히 처벌받은 사례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입법은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고 의무를 부여하는 가장 직접적이고 파급력이 큰 공적 행위이기에, 그 어떤 것보다 보수적이고 신중하여야 합니다. 특히 경찰 등 수사기관의 운신 폭을 좁히는 것은, 결국 일반 시민을 범죄로부터 보호하는 수단도 줄어든다는 점에서 극도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합니다. 나날이 늘어가는 묻지마 범죄와 강력범죄로 인하여 시민들은 오늘도 불안에 떨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아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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