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서아람 변호사입니다.

범죄 피해를 당하고 고소를 진행했지만

증거가 불충분하다거나 기타 다른 이유로

경찰에서 1차로 불송치 처분을 받은 후,

끝까지 싸워보기 위해 이의신청/항고/재정신청까지

길게는 1년, 2년까지 싸우시는 분들이 많으신데요.

당연히 단계가 올라갈수록,

결론을 뒤집을 수 있는 확률은 확확 떨어집니다.

그렇다면,

고등검찰청에서 내린 항고기각 결정에 대하여

법원이 재정신청을 받아들이는

인용률은 얼마나 될까요?

놀랍게도, 무려 0%대입니다.

정확히는 0.6% 정도인데요.

이것은 2022년 통계이고,

수사권 조정 이후로는

수사기관의 결정을

법원이 웬만해서는 뒤집지 않으려는

경향이 더욱 강해졌기 때문에,

인용률이 이보다 더 낮게

떨어졌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할 수 있겠죠?​

오늘은 이 어마어마하게 희박한 확률을 뚫고,

경찰도, 검찰도, 고등검찰도

전부 기소할 수 없다고 한 사건에 대해

재정신청을 진행하여

공소제기명령을 받아낸

(재정신청이 인용된)

매우 성공적인 사례를 소개하겠습니다.

1. 사건 개요

※ 블로그에 기재된 사례들은 모두 의뢰인 보호를 위하여 세심하게 각색됩니다.

의뢰인 B님은 20대 초반의 대학생으로, 동아리 친구들과 축제 뒤풀이를 했던 날 성범죄 피해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날 건강 상태도 좋지 않았고 술에도 취했던 B님은 사건 발생 전에는 의식이 없었지만, 다행히 범행 도중에 깨어나 더 심각한 피해가 발생하기 전 가해자를 저지할 수 있었습니다. B님은 가해자가 자신에게 용서를 비는 점과 같은 동아리 친구인 점을 감안해 고소를 진행하지 않기로 했으나, 자신이 몰랐던 추가 피해가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 후 저희가 아닌 다른 로펌을 고소대리인으로 선임하여 늦은 고소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가해자는 고소가 진행된 사실을 알게 되자 갑자기 태도를 바꿔 범행을 강경히 부인하였고, 변호인을 선임해 수사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였습니다. 고소인(의뢰인 B님)이 같은 동아리 친구인 가해자와 어떻게든 어색하지 않게 지내려고 최대한 분노를 억누르며 대화하거나 통화한 내용이 ‘성범죄 피해자답지 않다’는 수사관의 지적을 받으면서 수사는 내내 고소인에게 불리하게 진행되었습니다. 결국 불송치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고소인은 (저희가 아닌 다른) 변호인을 통해 이의신청을 진행했지만, 검찰에서도 경찰의 불송치이유를 그대로 인용하면서 무혐의 처분을 내렸습니다. 여성으로서 성범죄 피해에 대한 진술을 하고, 또 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너무도 고통스러운 과정이었던 고소인으로서는 그야말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일이었습니다.

도저히 부당한 수사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고소인은, 성범죄 피해 카페의 게시물을 샅샅이 뒤지다가 저희 로펌의 다른 의뢰인이 올려두신 검찰 항고 성공 사례를 발견하셨고, 그렇게 저를 알게 되어 찾아오셨습니다.

저는 이의신청 사건도 수임에 있어서 상당히 신중한 편이지만, 항고 사건이나 재정신청 사건의 경우 그 몇 배는 더 신중하게 하는 편입니다. 아무래도 인용률이 낮기 때문에 의뢰인의 니즈를 충족시켜 주지 못할 가능성도 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리 기록이나 자료를 검토하고 의뢰인에게 항고나 재정신청 인용 확률에 대하여 매우 현실적이고 냉정하게 알려드립니다. 제가 보기에도 결정 자체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 뒤집을 수 있겠다 싶을 때는 적극적으로 권고 해드리지만, 그게 아닐 때는 “솔직히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지만 그래도 끝까지 다투어보고 싶으시다면, 낮은 가능성이라도 최대한 높일 수 있도록 그 어느 변호사보다 열심히 일하겠다.”라고 말씀드립니다.

이 사건의 경우에도 미리 자료 검토를 거쳤는데요(자료 검토시에는 소정의 비용이 따로 듭니다). 검토 결과, 경찰과 검찰의 결정 내용에 법리적으로 심각한 오류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수사 과정에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수사가 미진했던 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다퉈보고 싶은 욕심이 들었지만, 고등검찰은 기본적으로 검찰이어서 항고인용에 항상 소극적이고, 법원 재정신청은 인용률이 0%에 수렴하니 의뢰엔에게 함부로 희망을 불어넣어 줄 수가 없었습니다. 다행히 의뢰인 분은 실패하더라도 끝까지 해보고 싶고, 꼭 제게 사건을 맡기고 싶다고 하셨고, 그래서 항고와 재정신청을 연달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2. 서아람 변호사의 조력

이 사건의 경우 수사 단계를 처음부터 진행하는 것 못지않게 굉장히 많은 에너지와 품이 들었는데요. 수사 자체가 너무 편파적이고 허술했던 탓에, 고소인과 제가 직접 3~4주 가량 매일 카톡과 통화를 해 가면서 증거를 직접 수집했기 때문입니다(다시 하라면 못할 것 같습니다 ㅎㅎㅎ).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의 진술 녹음, 진술서, 카카오톡 대화내용, 이메일, 카드결제 내역, 사진 등 경찰에서 확보할 수 있었지만 확보하지 않았던 자료들을 저희가 직접 찾아서 정리하였습니다.

또한 경찰과 검찰이 준강제추행/준강간의 법리에 대해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 거의 백 개에 달하는 상급심과 하급심 판례를 분석하여 검토한 후 첨부하고, 심지어 이 사건과 사실관계가 거의 같은 사건의 유죄 판결문까지 찾아내 첨부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사건 항고이유서는 어마어마하게 길어졌고, 접수를 받은 고등검찰청 직원 분께서 “이렇게 두꺼운 항고이유서는 검찰청 근무하면서 처음 본다”고 놀라워할 정도였습니다^^;;

<고등검찰청에 제출한 항고이유서>

보통 항고를 맡은 사건은 항고장과 항고이유서가 제출하면 거기서 땡~! 변호사가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고 심지어 연락을 받지도 않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 사건은 고소인이 정말 억울한 사건이었고 뒤집어야 하는 사건이었기에 항고 이후에도 계속 추가적인 시도와 노력들을 했습니다. 우선 고등검찰청 사건 담당 부장검사님과 유선면담을 하면서 사건에 대한 설명과 어필을 했고, 추가 의견서와 추가 자료를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담당 부장검사님께서도 이 사건에 대해서는 고민이 많이 된다고 하셨고, 저희 측 주장도 일리가 있으니 검토해보겠다고 하실 정도였습니다.

<이례적으로 항고 이후 제출한 추가의견서>

이렇게 엄청나게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고등검찰청에서는 ‘항고기각’ 결정이 내려졌지만, 예상했던 결과였기에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고등검찰청에서 항고를 인용하는 것은 한 마디로 같은 검찰청 소속인 수사검사가 수사에 있어서 법리오해/사실오인/수사미진의 심각한 오류를 범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겨로가가 되기 때문에 항고 인용에 있어서는 아무래도 소극적이고 지나치게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제가 검찰에서 검사로 일해보았기에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은 객관적이고 새로운 시각에서 봐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고, 그래서 의뢰인과의 협의 하에 곧바로 재정신청을 진행하였습니다. 검찰이 아닌 법원, 사법부의 판단을 받아보기로 한 것입니다. 재정신청이유서는 기존의 항고이유서와 비슷한 구성을 취하되, 그 사이에 새로 확보한 자료들이나 진술을 보강하여 더 풍부한 내용으로 제출하였습니다.

<고등법원에 제출한 재정신청서 및 재정신청이유서>

3. 사건 결과

0%의 확률을 이기고, 재정신청이 인용되었습니다!

보이시나요? 아래 결정문 이미지 파일에 있는,

“공소제기를 결정한다.”라는 문구.

고등법원이 재정신청을 받아들이게 되면, 사건은 다시 수사단계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곧바로 기소가 결정되는 효과를 갖게 됩니다. 그래서 검사는 재수사 과정을 거치지 않고 무조건 공소장을 붙여 기소를 해야만 합니다. 엄청난 강제력이죠? 공소제기에 관한 권한을 검사만이 독점하는 대한민국에서, 공소제기명령은 유일하게 검찰 아닌 사법부에서 공소 여부에 개입할 수 있는 매우 특별한 절차입니다.

그럼, 다음에도 또 좋은 내용의 성공사례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