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을 당했는데, 증거가 없어요. 고소하고 싶은데, 술 마시고 그 사람 집까지 따라갔던 것은 사실이라서 무고로 역고소 당할까봐 무서워요. 어떻게 하면 좋죠?”

검사 출신 여성 형사 변호사로서 성범죄 고소대리 상담을 하다 보면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입니다. 자기 발로 모텔에 같이 간 거 아니냐, 집에 같이 간 거 아니냐, 그럼 결국 성관계에 동의한 것 아니냐. 실제로 고소인이 수사 과정에서 반복해서 듣게 되는 질문입니다. 그러나 같이 모텔이나 방에 들어가는 것은 성관계에 대한 동의가 아닙니다. 연인이나 부부 관계라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며, 만일 특정 장소에 함께 들어갈 때까지는 성관계에 동의할 의사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이후에 마음을 바꾸어 동의 의사를 명시적으로 철회했다면, 그때부터 일어나는 폭행/협박에 의한 성관계는 강간에 해당합니다.

“정말로 합의 하에 의한 성관계였어요. 그 어떤 강제성도 없었고, 폭행, 협박은 당연히 없었습니다. 오히려 여자 쪽에서 더 적극적이었어요. 형사님께서도 저한테 불리한 증거는 하셨고, 애초에 그런 증거가 존재할 수가 없지만, 그래도 불안해요. 성범죄 사건에서는 피해자의 진술이 증거라면서요. 그러면 피해자가 계속 거짓말을 하면 저는 그것만으로 감옥에 가게 되는 건가요?”

이건 피의자/피고인 상담을 할 때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입니다. 2018년 성인지 감수성 판결 이후로 ‘피해자 말만 있으면 유죄가 인정된다’는 잘못된 해석이 퍼져 나가고 있는데, 2018년 판결의 핵심은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강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각종 정황 증거와 일치하고, 일관성과 구체성이 있어 충분히 신빙성이 있는 피해자의 진술을, 피해자가 사건 직후 곧바로 신고하거나 고소하거나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일상생활을 유지하였다는 이유로 신빙성을 배척하지 말라는 취지입니다. 아무것도 없고 달랑 피해자 진술만 있는데 그걸 가지고 유죄를 인정하라는 취지의 판결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성범죄 고소를 할 때는, 변호사가 고소인 진술만 기계처럼 받아적어 고소장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수사 초기부터 고소인의 진술을 뒷받침만한 정황 증거와 간접 증거들을 고소인과 함께 찾아야 하고, 그 다음에는 고소인의 진술에 신빙성을 부여하기 위해 일관성과 구체성을 확보시켜 주어야 합니다. 반대로 성범죄 피의자의 결백을 입증할 때에도, 고소인의 진술을 아무 근거없이 반박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증거는 없더라도 최대한 진술에 부합하는 간접 증거들을 찾아 상대방의 진술을 ‘탄핵’해야 합니다. 이와 같은 원리는 나중에 사건이 공판으로 가게 되었을 때 증인신문/ 피고인신문과정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 현재 항소가 제기되어 아직 확정 전인 사건이라 우선 간략하게 결과만 소개합니다. 강간 피해자가 술을 마시고 피고인의 차를 타고 함께 이동했고, 사건이 발생한 직후에도 그 어떤 신고나 고소를 하지 않았던 사건에서, 초기부터 피해자와 협력하여 간접 증거를 최대한 확보해 고소를 진행하고 진술 조력을 한 결과, 피고인의 강간 혐의가 유죄로 인정되어 1심 실형이 인정된 사안입니다. 

그럼, 다음에도 또 좋은 내용의 성공사례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