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서아람 변호사입니다.

범죄의 증거를 확보하기 어려운 강간, 강제추행 등 성범죄는 다른 범죄에 비하여 고소 성공률이 상당히 낮습니다.

더구나 성범죄라는 죄명 자체가 워낙 중하고, 기소될 경우 신상정보 등록 및 공개 등 불이익도 크다 보니,

불송치나 무혐의 처분이 나왔을 경우 상대방(성범죄 가해자)이 오히려 무고로 고소해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많은 성범죄 피해자 분들이,

“증거가 너무 없어서 고소한다 해도 처벌도 못하고, 오히려 내가 무고로 몰리는 게 아닐까?” 걱정하시기도 합니다.

이 걱정이 괜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게, 사건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녹음이나 녹화가 없는 상황에서, 상대방이 정황 증거를 왜곡하거나,

현장에 같이 있던 친구들이나 지인들을 부추겨 거짓 진술을 하게 하여 정말 고소인이 무고한 것처럼 몰고 가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부당한 상황이 일어난 경우,무고 누명을 쓴 피의자(성범죄 피해자)의 억울함을 밝히고 처벌받지 않게 하는 것은 변호인의 역할일 텐데요.

오늘은 강제추행을 당한 후 고소하였지만 무혐의 처분을 받고, 이후 억울하게 무고 사범으로 몰렸던 어느 여성분의 결백을 입증한 성공사례를 소개하겠습니다.

1. 사건 개요

※ 블로그에 기재된 사례들은 모두 의뢰인 보호를 위하여 세심하게 각색됩니다.

의뢰인 분은 현직 군인 신분으로, 동료 군인으로부터 소개받은 타 부대 사람들과 어울리며 친목을 하던 자리에서 문제의 상대방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함께 술을 마시던 다른 사람들이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 벌어진 상황이었기에 직접적인 목격자는 없었습니다.

의뢰인 분은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군 조직의 특성상 성추행 신고를 하면 자신에 대해서도 안 좋은 소문이 돌 것이라고 생각했고, 너무 두려웠다고 합니다. ‘술 취해서 실수한 건데 내가 너무 유난 떠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합니다. 상대방은 군 고위직을 가족으로 두고 있는 소위 ‘빽 있는’ 사람이었기에 더욱 그랬습니다. 결국 의뢰인 분은 이 일을 없던 것으로 덮기로 하고 상대방이 보내는 문자나 카톡에도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 답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잊으려고 해도 괴로운 마음은 가시지 않았습니다. 힘으로 제압당한 채 추행당했을 때의 충격과 수치심이 계속 떠올랐다고 합니다.

고민 끝에 의뢰인 분은 조금 늦게 신고와 고소를 진행하였지만, 단둘이 있던 자리에서 일어난 일이라 증거가 없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상대방은 사건 직후 주고받은 호의적이고 일상적인 카카오톡과 메시지를 증거로 들면서 ‘상호 호감에 의한 스킨십’이라고 주장했고, 같은 자리에 있었던 자신의 일행을 참고인으로 내세웠습니다. 결국 강제추행 사건은 불송치 처분이 나왔습니다. 그러자 상대방은 의뢰인에 대하여 무고 형사 고소와 함께 무고를 이유로 한 막대한 금액의 손해배상청구소송까지 걸어오게 되었습니다.

의뢰인 분은 성범죄 고소를 진행할 때부터 수임한 로펌이 있으셨지만, 담당 변호사가 별로 신경을 써주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을 계속 받으셨고, 이대로 있다가는 정말 억울하게 무고로 처벌받고 불명예 전역을 하게 될 수도 있겠다는 절박함에 저를 찾아와 사건을 맡기게 되셨습니다.

2. 서아람 변호사의 조력

이미 종결된 사건에 대하여 다시 한번 변론하는 건 당연히 별로 의미가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무고 사건은 다릅니다. 무고 사건은 아주 특이하게도, 무고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원 사건(이 사건의 경우는 강제추행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수사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 됩니다. 그래서 원 사건에서 기존에 제대로 주장하거나 소명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면 이를 보완하여야 하고, 원 사건에서 수사기관의 사실오인이나 법리오해 또는 수사미진이 있었다면 이를 반드시 지적해야 합니다.

통상적인 성범죄(공중밀집장소추행 등 일부 강제추행 범죄군을 제외)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단둘이 있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경우가 많아, CCTV 영상이나 목격자 진술 등 직접적인 증거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피해자의 일관되고 신빙성 있는 진술+가해자의 명확한 자백이 있는 경우, 피해자의 일관되고 신빙성 있는 진술+(가해자가 부인하더라도) 피해자의 진술을 뒷받침하는 상당히 구체적인 간접 증거(ex. 사건 직후 도망나오는 피해자의 cctv 영상이라든가, 피해자가 제3자에게 도움을 요청한 연락 내역이라든가, 피해자의 찢어진 옷이라든가, 신체적으로 상처를 입은 사진이라든가 등등)가 있는 경우 혐의가 인정되고 기소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합의에 의한 성관계’였음을 주장하기 위하여 가해자들이 제출하는 증거도 대개 비슷한데요. 사건 전후로 피해자와 주고받은 (보통은 감정적으로 격하지 않은 내용의) 문자 메시지나 카카오톡 자료, 피해자와 함께 밥을 먹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술을 마신 카드 결제내역, 함께 택시를 탄 탑승내역, 사건이 모텔이나 호텔에서 이루어졌다면 강압적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함께 들어가는 입실 전 CCTV 영상 등입니다.

사건 도중에나 사건 이후에 도망칠 수 있었는데 도망치지 않았으니까, 사건이 일어난 후에 곧바로 신고하거나 고소하지 않고 오히려 카카오톡까지 주고받았으니까, 성범죄 피해자가 아니다 라는 결론입니다. 누구는 논리적인 결론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논리적인 흐름은 2018년에 나온 후 지금까지 판례의 선구적인 지침이 되고 있는 ‘성인지 감수성 판례’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입니다.

물론 상대방이 상호 묵시적인 합의하에 스킨십을 하였다고 주장하면서 그에 관한 증거로 각종 정황 증거를 제출했지만, 오직 그런 사전, 사후적 정황들만 들어서 사건 당시에 일어난 강압적인 신체 접촉에 ‘강제성이 없다’고 판단하는 것을 법리적으로 옳지 않습니다.

그래서 위와 같은 내용과 함께, 더불어 현재의 증거만으로 상대방의 강제추행 혐의를 입증하기 어렵다고 할지라도 그렇다고 해서 그게 의뢰인에 대한 무고 인정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점을 우선 일차적으로는 경찰 조사에서의 진술을 통해서, 그리고 이차적으로는 검찰 의견서를 통하여 충분히 논증하였습니다. 

(군 수사관은 일반 경찰과 달리 수사 중인 사건의 종결권이 없어 불송치 처분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이 없고, 군 사건은 군 수사관이 수사를 한 후 예외없이 모두 군검사에게 송치하게 되므로, 의견서도 군 검찰 단계에서 제출하는 것이 효율적입니다)

‘불송치=무고’가 아닌 이유는 아주 명확한데요. 바로 ‘입증책임’ 때문입니다. 형사사건에서 수사기관(검사)은 피의자가 해당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을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를 넘어서’ 입증해야 합니다.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어느 정도인지는 당연히 해석의 여지가 있지만, 통계적으로는 보통 85% 이상의 확실함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우리나라에서 기소된 사건의 유죄 판결율이 98퍼센트가 넘는다는 점을 들어 98퍼센트 이상의 확실함이라고 설명하는 견해도 있습니다).

따라서 B가 A를 강간죄로 고소했을 때,

A가 B를 강간했다는 것이 85퍼센트 이상 확실하지 않으므로 불송치/무혐의,

(가령 강간이 맞다 아니다가 60대 40으로 확실/불확실하면 불송치/무혐의)

반대로 B를 무고죄로 처벌하려면,

이때는 1) 강간이 아니라는 것이 85퍼센트 이상 확실해야 하고,

추가로 B가 강간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알거나 기억하면서 의도적으로 허위 고소했다는 것이 85퍼센트 이상 확실해야 하기 때문에,

(예를 들어 ‘강간’, ‘준강간’, ‘강제추행’의 개념에 대해 잘 알지 못하여 잘못 고소하거나, 본인의 기억 자체가 불명확한 경우는 무고가 아님)

성범죄 불송치 사건에서 무고의 인정 요건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의외로 굉장히 까다로워지는 것입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고 지나가는 부분인데,

수사기관에서는 불송치 또는 무혐의 처분을 할 때 반드시 ‘무고인지 여부’를 판단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즉, 고소인이 무고를 한 것이 명확하다면 피고소인이 따로 고소하지 않아도 수사기관에서는 무고로 인지(좀 어려운 단어인데 입건과 비슷한 개념이라고 보시면 됩니다)해서 자체적으로 수사를 개시한다는 뜻입니다. 저도 실제로 검사로 근무할 때 다수의 사건에서 무고 인지를 해 본 경험이 있고, 무고 인지를 해서 무고 사범을 직구속하거나 실형을 선고받게 한 경험도 있습니다. 허위 고소임을 밝혀내서 무고 사범을 처벌하는 것은 검사로서 매우 중요한 업무이고 또 유의미한 실적이 되기 때문에, 무고가 명확한 상황이라면 제대로 된 검사/수사관은 그냥 넘어가지 않습니다. 이번에 제출한 의견에서는 해당 사건의 원 사건인 성범죄 사건에서 의뢰인이 무고 인지된 적이 없다는 점 또한 강력하게 피력하였습니다.

경찰 조사를 받고, 검찰 단계 의견서를 제출하였지만, 의뢰인 분의 걱정은 쉽사리 가시지 않았는데요. 검찰에서 사건을 직접 조사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습니다. 기소하고 싶어서 조사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에 의뢰인 분은 일상 생활을 제대로 못 하실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뭔가 확실하게 더 할 수 있는 걸 고민하던 가운데, 사설 심리생리검사를 받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성범죄 사건의 수사 단계부터 의뢰인은 상대방과 자신에 대하여 둘 다 거짓말탐지기를 해 달라고, 자신은 거리낄 게 없다고 자신있다고 거듭 말해왔는데, 수사기관에서는 거짓말탐지기를 해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검찰청 분석관 출신의 심리생리검사관이 있는 사설기관을 찾아 거짓말탐지기를 실시했고, 진실 반응을 얻어 그 자료를 검사실에 의뢰인에게 유리한 자료로 추가제출도 하였습니다.

민사사건까지 함께 진행하면서 이 사건은 상당히 오랜 기간이 걸렸는데요. 더딘 절차와 트라우마로 괴로워하는 의뢰인 사이에서 저도 힘들 때가 많았지만, 저를 믿어주시고 격려해 주시는 의뢰인 분을 보면서 다시 기운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성범죄를 당한 것도 억울한데 무고로 고소까지 당하다니!’ 의뢰인의 상황을 생각하면 다시 한번 분노가 느껴지고 제가 다 억울해서, 뭐라도 하나 더 써서 내고, 전화라도 한 번 더 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3. 사건 결과

그래서 결과는?

검찰 단계에서 군검사님으로부터 무고 사건에 대한 무혐의 처분을 받았습니다! 

정말 다행히도, 의뢰인은 결백을 인정받았습니다. 이번 결정이 중요한 이유는, 이 사건은 형사 사건 외에 무고로 민사 손해배상청구소송도 걸려 있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형사 무고 사건이 무혐의가 났는데 민사에서 손해배상청구 인용이 나는 것은 구조적으로 매우 어렵습니다(당연하겠죠?). 이로써 민사소송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된 것이라서, 저도 너무나 기쁩니다.

그동안 너무도 많은 마음고생을 하신 의뢰인 분께 이번 결정이 진정한 위로이자 보람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아울러 저 또한 이 사건이 더 좋은 결말을 맞을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혹시 억울하게 무고 사범으로 몰릴까 봐 성범죄를 당하고도 고소를 망설이고 계신 분들이 이 글을 읽으신다면, 꼭 상담받으러 오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럼, 다음에도 또 유익한 내용의 성공사례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